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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요한 바오로 2세 논란으로 드러난 가톨릭 교회의 정치 본색

태양14 2025. 4. 27. 09:00

현대 민주사회에서 정교분리 원칙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이지만,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종교 기관과 정치권의 관계는 여전히 밀접하고 때로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가톨릭 교회는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곤 하지만, 고위 성직자가 직접 특정 정책이나 선거, 정당에 관여하려 할 때 정치 개입 논란이 발생한다. 최근에도 가톨릭 교회 지도층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 사례가 관찰되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뜨겁다. 본 논문에서는 한 최신 사례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 및 고위 성직자의 정치 개입 양상을 살펴보고, 그 동기와 방법,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과 비판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주요 사례 배경 - 폴란드 가톨릭 교회와 정치의 밀착

폴란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톨릭 신앙 국가로,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민족 정체성과 사회 통합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폴란드에서는 가톨릭 교회, 특히 고위 성직자들이 정치권과 지나치게 밀착하면서 세속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015년 이후 집권한 우파 민족주의 정당인 법과 정의당(PiS) 정부는 노골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대표적 사례가 낙태법 개정성소수자 문제이다. 2020년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예외 조항을 없애 사실상 대부분의 임신중절을 불법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이 있기까지 폴란드 가톨릭 주교회의와 고위 성직자들은 오랜 기간 낙태 전면 금지를 강력히 요구하며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결국 교회의 입장이 국가 정책으로 구현된 것이다. 또한 일부 주교와 성직자들은 성소수자(LGBTQ+)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정치적 논쟁에 가담했다. 예를 들어, 크라쿠프 대주교는 공개석상에서 동성애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가리켜무지개 페스트(역병)라고 언급하면서, 이를 사회의 도덕을 해치는 위험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발언은 당시 집권당이 성소수자 권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종교적 수사를 통해 정치적 의제를 뒷받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폴란드 가톨릭 교회와 정치권의 밀착은 정당 간 연계로도 나타났다. 법과 정의당 정부 하에서 교회는 여러 특혜와 지원을 받았으며, 정부 인사들은 주요 가톨릭 행사에 참석해 자신들을기독교 가치의 수호자로 강조하곤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폴란드 정부는 재정적으로 교회를 우대하여 국고 보조금을 크게 증액하고, 가톨릭 관련 기관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의 정교 동맹으로 인식되었고, 교회 지도부와 여당 간에 보이지 않는 유착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고위 성직자들이 특정 정책을 공개 지지하거나, 선거 국면에서 암묵적으로 여당에 유리한 발언을 내놓는 일도 발생했다. 예컨대, 일부 성직자들은 강론이나 언론을 통해가톨릭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법을 추진하는 정치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식의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폴란드 사회에서 교회가 사실상 정치 세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2.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논란과 선거 개입

2023년 폴란드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 개입 논란이 정점에 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폴란드 출신의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Karol Wojtyła, 교황 재임 1978~2005)를 둘러싼 역사적 의혹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다. 2023년 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과거 크라쿠프 대주교로 재직하던 시절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가해 사제들을 다른 본당으로 전근시키는 방식으로 은폐에 가담했다는 폭로가 폴란드 언론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 보도는 폴란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특히 교회에 비판적인 진영에서는 교황청과 폴란드 교회가 진상을 규명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폴란드 가톨릭 교회 수뇌부와 보수 진영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이러한 의혹 제기를 교회에 대한 공격이자 민족 영웅의 명예 훼손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폴란드 의회에서는 집권당 주도로 요한 바오로 2세의 명예를 수호한다는 결의안까지 통과시켰고, 국영 방송과 가톨릭 매체들은 연일 교황의 업적을 찬양하며 의혹을 제기한 언론을 비난했다.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 역시 미사 강론과 성명을 통해성인 교황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에 신자들이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심지어 일부 주교는 교황에 대한 공격이외세와 세속주의 세력이 교회를 약화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신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마침 2023년 가을에 치러진 폴란드 총선거 국면과 겹쳐, 사실상 교회가 여당의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집권당은 전통적 가톨릭 신자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 수호 담론을 적극 활용했고, 교회도 이에 부응하여 교황 성인의 권위를 내세움으로써 보수층 결집을 돕는 역할을 한 셈이었다. 야당과 진보 성향 매체들은 이를 두고교회가 역사적 진실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 성학대 은폐 의혹이라는 심각한 사안이 제기되었음에도 교회가 성찰과 책임보다는 정치적 동원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폴란드의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통해요한 바오로 2세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신앙을 정치선전에 이용하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이처럼 교회 지도부의 대응은 도리어 교회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말았다.

 

3. 사회적 반발과 비판

가톨릭 교회 및 고위 성직자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에 대해, 폴란드 사회 특히 젊은 세대와 도시 시민층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먼저, 교회-정부의 긴밀한 공조 하에 추진된 낙태 전면 금지에 대해 2020년 말부터 2021년까지 대규모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수만 명의 시민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성당과 교회 건물 앞에서내 몸은 나의 것”, “우리는 신부의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고, 일부 여성단체는 미사를 방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에 개입했다고 비판하며, “주교가 아닌 시민이 입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위는 폴란드 사회에서 전례 없이 교회를 직접적으로 향한 항의였으며, 교회의 정치 개입이 초래한 사회 분열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후 2023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요한 바오로 2세 논란에서도 여론의 분열과 이반이 뚜렷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층과 보수 성향 국민들은 교회와 함께 교황의 명예 수호를 외쳤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이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청년층과 도시 거주자들은 교회 지도부의 행태를 보며 극심한 실망을 표했다. 많은 이들은교회가 성범죄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대신 애국심만 자극하고 있다거나성인을 정치도구로 삼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실제로 폴란드에서 20~30대 젊은이들의 탈종교화 경향은 최근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미사 참석률이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떠나는 절차(이른바 관보에 세례 삭제 신청을 하는 것)에 참여하는 시민도 늘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교회의 위선과 정치적 편향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20대 청년은교회가 신앙의 보루가 아닌 정치 플레이어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신뢰를 잃었다. 더 이상 나의 신앙을 이러한 기관에 맡길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폴란드의 시민단체들은국가는 세속적이어야 한다며 교회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일례로, 몇몇 단체는 공공재정의 교회 지원 중단공립 학교 종교수업 폐지 등을 요구하는 청원 운동을 벌였다. 이는 교회가 정치와 교육 등 공적 영역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행동이다.

국제 사회와 외신들도 폴란드 상황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유럽의 언론들은폴란드에서 제단(교회)과 왕좌(정부)의 동맹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논평을 내놓았고, 교회의 반동적 행보가 오히려 폴란드의 세속화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3년 총선 결과, 법과 정의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정권 재창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분석가들은 교회와 너무 밀착한 보수 여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과 반감이 표심에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이는 교회의 적극적 정치 개입이 단기적으로는 특정 정치세력을 돕는 듯 보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사회 다수의 반발과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준다.

 

4. 정치개입 이유와 영향에 대한 분석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배경에는 여러 동기가 존재한다. 첫째는 도덕적 가치 수호라는 명분이다. 교회는 낙태, 가족, 성윤리와 같은 문제에서 자신의 교리를 관철시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려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폴란드 주교들이 낙태법 강화나 성소수자 권리 제한에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들 스스로는 신앙의 진리를 사회에 구현하려는 정당한 참여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유지이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폴란드 교회는 국가 재건 과정에서 큰 발언권을 얻었고, 이를 통해 교육, 복지,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특권적 지위가 세속화로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 지도부는 친교회 성향의 정권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 권력과의 협력을 통해 교회의 입지를 지키고자 하는 현실적 동기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셋째는 개인적 야망이나 정치관여 욕구이다. 일부 고위 성직자의 경우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신앙과 정치를 분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적극적으로 세상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영향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교회가 인권이나 사회정의의 편에 서서 권력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역사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사례에서처럼 교회가 특정 정권의 편에 서서 정치 쟁점에 개입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정적 파장이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선 정치의 종교화, 종교의 정치화 현상이 심화되어 사회 통합이 저해된다. 신앙이 정치적 양극화 도구로 이용되면, 신자들마저 정치 성향에 따라 분열되고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또한 교회의 도덕적 권위가 손상된다. 본래 종교기관은 초월적 가치와 도덕성을 대표해야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에게도 존경을 받는데, 현실 정치에 개입하여 편향된 모습을 보이면 그 권위는 훼손되고 만다. 폴란드에서 젊은 세대의 이탈과 교회에 대한 냉소가 이를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원칙 중 하나인 정교분리의 침해 문제가 있다. 종교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면, 종교를 갖지 않은 국민이나 소수 신앙을 지닌 집단은 소외감을 느끼고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가톨릭 교회와 고위 성직자의 최근 정치 개입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종교와 정치의 경계는 자칫하면 모호해지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 방식과 한계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신앙공동체이지 정치집단이 아니다. 정치 권력과의 지나친 유착이나 특정 정파에 대한 지지는 교회의 도덕적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그 가르침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교회는 보편적 윤리와 정의의 관점에서 사회 비평을 하되, 정당 정치에는 거리를 두는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특히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신념과 가치가 공존하기에, 종교가 공적인 정책 결정에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폴란드 사례에서 나타났듯, 교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될 때 오히려 신자들의 이탈과 사회의 세속화를 촉진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권과 평화, 약자 보호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특정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는 사회의 양심으로서 건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신자들의 신앙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보호될 수 있다. 각국의 가톨릭 지도자들은 이번 사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교회의 공적 역할과 경계에 대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교회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사회의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임을 최근의 경험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