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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콘클라베 밀실 권력, 민주주의 시대의 역설

태양14 2025. 5. 4. 09:30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회의가 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과정에 정작 평범한 신자들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다. 교황 선출회의, 일명 콘클라베에서는 오로지 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추기경들만이 투표에 나선다. 그것도 바티칸 한 구석의 폐쇄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비밀회의다. 겉보기에는 전통과 경건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절차의 실상은 현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폐쇄적 구태이다.

콘클라베라는 단어는 라틴어로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일 정도로, 교황 선출 과정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이루어진다. 이 회의에는 선거권을 가진 약 120명의 추기경들만 입장할 수 있으며, 이들 모두는 이전 교황들에 의해 직위에 오른 엘리트 성직자들이다. 전 세계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인물을 뽑는데도 신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성직자조차 이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는 규모나 중요성 면에서 비교할 때 오늘날 어떤 세속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다.

교황 선출을 두고 가톨릭 교회는 흔히성령의 인도 하에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졌다며 신의 뜻을 운운한다. 새 교황이 결정되면신이 선택한 분이라는 경외 어린 찬사가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화 뒤에 숨은 현실은 딴판이다. 엄숙한 기도와 찬송 소리 너머로 펼쳐지는 것은 철저한 인간들의 정치 드라마다. 어떤 추기경은 개혁을, 다른 이는 보수적 안정을 추구하며 서로 표 계산을 하고 교묘한 연합을 꾸민다. 결국 교황은 이런 힘겨루기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 발표 순간이 오면 모든 과정이신의 뜻이라는 말 한 마디로 포장된다. 인간의 정치적 산물을 두고신이 선택했다고 둔갑시키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신앙을 빙자한 허위 의식이다.

콘클라베의 철저한 비공개 진행과 의식화된 신비주의는 가톨릭 교회의 권력 구조를 현재 모습 그대로 공고히 만드는 역할을 한다. 외부의 어떤 견제나 참관도 허용되지 않는 이 선출 과정은, 교회 지도부의 기득권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막이다. 마치 중세 봉건 영주들이 성문 안에서 차기 군주를 추대하던 모습을 연상시키는 구조 속에서, 교회의 권력은 소수 성직자 집단 내부에서만 재생산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평신도나 하위 성직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된 채 교회 지도자가 결정되고, 신자들은 일방적으로 그 결과를 수용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러한 폐쇄적인 권력 세습 구조는 민주주의 시대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민주권과 투명성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교회만이 구시대적 특권 체계를 고집하는 셈이다.

물론 교회 측은종교 조직은 세속 국가와 운영 원리가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근대적 방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하고도 세계인의 존경과 신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콘클라베가 신앙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교회의 도덕적 권위 실추로 돌아올 것이다. 시대는 변했다. 밀실에서 태어난 교황이라는 이 역설을 교회가 언제까지 답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