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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가? – 교리 분열과 반지성주의의 해부

교리 분열이 가져온 신앙의 혼란과 불신

개신교는 교리적 분열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성장해 온 종교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교황권과 전통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원칙 아래 출발한 개신교는, 역설적이게도 해석과 교리의 차이로 무수한 분파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 교단 및 교파 수는 2023년 기준 약 47,300에 이르고, 2025년에는 49,000, 2050년에는 64,000개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지난 세기 동안 교단 분열의 속도가 신자 수 증가율보다도 높았다는 의미로, 교회가 지속적으로 내부 분화를 거듭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산수조차 헷갈릴 정도로 많은 교파와 교단이 난립하는 현실 자체가 신앙의 순수성과 진리에 대한 혼란을 야기합니다.

각 교단은 저마다 자신들이 정통 교리를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교파마다 예배 형식부터 신학적 입장까지 제각각입니다. 한 교회의 강단에서우리가 참된 복음을 가르친다고 선포해도, 바로 길 건너 다른 교회에서는 다른 해석과 가르침을 내세우는 식입니다. 그 결과 신자들은 무엇이 참된 종교인가 혼란을 느끼기 쉽고, 교회 밖의 시선으로는 개신교 신앙의 일관성과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결국 서로를 이단시하거나 비난하며 분쟁과 분열을 일삼는 모습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하나 됨의 가치와 배치되어, 자가당착에 빠져 도덕적 권위마저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해방 직후부터 교권 다툼과 교리 해석 차이로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습니다. 광복 후 월남한 평안도 출신 지도자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미군정의 비호 아래 일제 잔재 재산을 둘러싼 갈등을 빚은 데 이어, 이후 성경 해석을 둘러싼 신학 논쟁으로 2차 분열이 일어나고, 나아가 공산주의 연루 시비로 3차 분열까지 이어지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 말 한국의 최대 교파였던 장로교는 둘로 갈라져 각각 예장 합동예장 통합 교단이 되었고, 이후로도 크고 작은 분파가 계속 생겨났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교리 및 신학적 입장 차이로 인한 교단 분열이 현재 진행형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연합감리교회(UMC)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근 대규모 분리를 맞았습니다. 오랜 논쟁 끝에 결국 교단이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라졌고, 2022년에는 보수 성향 교회들이 대거 이탈하여 새로운 교단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2023년 말까지 연합감리교회 소속 교회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천 개 교회가 탈퇴하였고, 이 중 수천 곳은 아예 새로운 보수 교단에 합류했습니다. 이처럼 교단 내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고 분파로 귀결될 때, 남는 것은 신앙적 혼란과 상처입니다. 분열을 겪은 교단에 속했던 평범한 신자들은 극심한 배신감과 혼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였던 공동체가 갈라서며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영적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더 나아가 교회 밖 대중들은 이러한 분열 사태를 보며 개신교 전체에 등을 돌리곤 합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불과 21%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나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보다도 신뢰 수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교회 내부의 계속된 분열과 분쟁이 대중의 인식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이렇듯 교리적 분열은 신앙 내부의 혼돈대사회적 신뢰 추락을 동시에 초래하여, 개신교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반지성주의가 초래한 반성과 사회적 괴리

개신교회의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교회 내 반지성주의란 말 그대로 지성과 이성에 반하는 태도로서, 신앙생활에서 합리적 사고와 비판적 질문을 배척하는 풍토를 뜻합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신자들에게 깊이 생각하기보다는아무 질문 말고 우선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의심과 탐구는 신앙이 부족한 것으로 취급되고, 오직 맹신과 순종만을 미덕으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한 비평은 이러한 기독교 반지성주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신자로 하여금 생각하지 말고, 질문하지 말고 일단 믿으라고 합니다. 기도에만 힘쓰라 합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과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이성을 배제한 신앙은 결국 기독교를 본래의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하고, 개인의 욕망만을 절대시하는 왜곡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개신교 내부에는 역사적으로 지성에 대한 불신이 뿌리내린 맥락이 있습니다. 19~20세기 초에 보수적 선교사들이 전한 문자주의적 신학과 근본주의 영향으로, 한국 교회 등 일부 개신교회에는 초창기부터 반지성적 신앙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성경 무오설을 절대화하면서, 과학적·비판적 탐구는 받아들이지 않는 풍조가 강해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앙인은 어떠한 의문이나 회의도 가져선 안 되고, 목회자의 말씀이 곧 절대 진리인 양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교육이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내에 합리적 토론과 지적인 성장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오래 믿어와도 피상적인 교리 암송에 머무를 뿐,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여건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교회 소그룹 성경공부도 형식적인 나눔에 그치기 일쑤이고, 정작 진지하게 신학적으로 접근하면너무 학문적이다라며 꺼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결과 신앙의 성장과 함께 지적 갈증을 느끼는 신자들은 교회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실제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의 가르침만으로 지적 만족을 얻지 못해 숨결처럼 몰래 신학 서적을 탐독하거나 외부 공부 모임에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질문하고 배우려 해도믿음이 약하다는 핀잔을 듣거나 마땅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차츰 실망하며, 결국 교회를 떠나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배움의 열정을 충족해 주지 못하는 반지성주의적 문화는 교회 내 신실한 신자들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반지성주의는 단지 개인의 신앙 문제를 넘어, 교회 공동체의 건강성사회와의 관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우선 교회 내부적으로는 맹목적 순종 문화가 강화되어, 건전한 토론과 견제가 어려워집니다. 목회자의 권위에 이성적 분별 없이 복종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만일 지도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아도 제어하기 힘듭니다. 극단적인 사례로, 과거 한 논란이 된 목사는 집회에서 여성 신자들에게 비상식적인 요구를 해도시키는 대로 해야 참된 순종이라는 취지로 강요하였는데, 이러한 일탈적 발언까지 맹신으로 받아들이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목회자를 향한 맹신비판 금지 분위기가 굳어지면, 종교 공동체는 폐쇄적 집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큽니다. 동시에 이러한 반지성주의 문화는 각종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퍼지기 쉬운 토양이 됩니다. 실제로 보수적 개신교회 일부에서는 성직자 권위주의와 결합된 반지성주의로 인해, 근거 없는 유언비어도 비판 없이 수용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합리적 대화보다는 신앙적 진영논리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교회는 사회와 괴리를 일으키고 맙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국의 일부 극우 성향 교회들은 방역 지침을 거부하고 정부에 대한 각종 음모론을 신봉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서울의 사랑제일교회 사례에서 보듯이,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역학조사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고, “정부가 우리를 표적으로 삼아 생화학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신도들 사이에 퍼뜨렸습니다. 이러한 비과학적 주장의 맹신은 결국 대규모 집단감염으로 현실화되어 사회 전체에 위험을 초래했지만, 정작 해당 교회 신도들은 이를믿음에 대한 박해라고 여겨 더욱 결집하는 악순환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반지성주의에 빠진 신자들은 사회의 상식과 동떨어진 신념 체계에 갇혀버려, 사회적 합의공공선과 충돌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교회 공동체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광신적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의 극단적 일부는 현실 정치와 결합한 혐오와 폭력 조장 행위로까지 나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기독교 신앙의 이름을 앞세운 이러한 행태는 일반 대중에게 큰 거부감을 남겼습니다. 평화나무 등 기독교 시민단체에서는한국교회 내 반지성주의적 경향이 강해질수록 기독교 극우세력의 폭력성이 심화한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맹목적 신앙을 강요하는 반지성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반지성주의는 교회 내부적으로 건강한 성장의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외부적으로는 교회를 사회와 단절시키고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

이상에서 살펴본 교리 분열반지성주의는 개신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는 끊임없이 내부분열을 일으켜 공동체의 통합을 해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과 사회와의 괴리를 심화시켜 공동체의 외연을 좁히는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한계는 각각 교회의 내적 건강성과 외적 신뢰를 갉아먹으며,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존속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분열로 인한 세력 약화와 신뢰 상실, 그리고 반지성주의로 인한 인재 유출과 사회적 고립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미래 세대에게 교회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존재가 될 우려가 큽니다. 실제로 교세 감소청년 세대의 이탈 현상이 이미 서구 사회는 물론 한국 교회 안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는 추락하고, 교인 수는 줄어들며, 남은 신자들조차 서로 갈라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면 과연 교회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한 목회자는종교적 영역에서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맹목적인 추종을 강요하는 집단은 결코 교회라고 불릴 수 없다, “사유하지 않은 교회는 결국 자멸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까지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 성찰과 이성을 상실한 채 맹목으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무너지는 길이라는 지적입니다. 또한 언론에서는눈을 가리고 맹목적 믿음만을 요구하며 성장해온 개신교가 반성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광기는 언제든 되풀이될 것이고,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통렬한 비판도 나옵니다. 결국 교리적 분열반지성주의의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하지 못한다면, 개신교회는 스스로 존립 기반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개신교회가 보여 준 여러 병폐에 비추어 볼 때, 교회가 자기 혁신에 실패한다면 사회로부터의 신뢰 회복은 커녕 자정 능력을 상실한 채 쇠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열반지성이라는 두 가지 치명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개신교회는 내부로는 분열되어 무너지고 외부로는 고립되어 소멸될 수 있다는 냉혹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할 때입니다. 과연 현재의 모습대로 미래 세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한 개신교회가 겸허한 성찰과 용기 있는 개혁을 이루어야 가능하겠지만, 긴 시간에 걸쳐서도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참된 종교가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요?